작품 상세 정보
캔버스에 유채 및 UV 반응 안료
ø : 91cm
크리스탈 플라워
2026
「피어남의 기억」은 지워진 이미지가 어떻게 흔적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시각적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형 캔버스 위에 그려진 꽃에서 시작되었다. 제니퍼 리는 처음 그린 이미지에 만족하지 못해 그 위를 새로운 색의 층으로 덮었지만, 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남겨진 형태와 파편들은 새로운 화면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 안에서 기억 자체가 크리스털처럼 결정화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원형 화면 전체에는 꽃의 파편들이 깨진 크리스털이나 분열된 프리즘을 연상시키는 수많은 각진 면을 통해 재구성되어 있다. 분홍색과 붉은색, 푸른색과 흰색, 그리고 곳곳에서 번쩍이는 노란색이 서로 겹치고 충돌하면서 원래의 꽃이 어디에서 끝나고 크리스털 구조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화면 중심의 짙은 진홍빛 형상은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의 강렬한 존재로 응축시키며, 마치 물감 아래 묻혀 있던 무언가가 다시 모여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유화와 UV 반응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시각적 상태로 존재한다. 일반 조명 아래에서는 밝은 흰색과 푸른색, 분홍색과 다양한 반사색이 화면을 지배하며, 복잡한 크리스털 표면을 통과한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자외선 아래에서는 화면의 시각적 질서가 극적으로 변화한다. 강렬한 마젠타와 보랏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중심의 꽃은 더욱 선명해지며, 이전에는 미묘하게 존재하던 흔적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워지거나 감춰진 것 역시 우리의 즉각적인 지각 너머에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제니퍼 리의 Crystal Flower 시리즈에서 「피어남의 기억」은 회화와 지움, 그리고 기억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인 시각적 형태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처음의 꽃을 덮어버리는 행위는 그것을 소멸시키지 않고, 오히려 남겨진 흔적을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변화시켰다. 크리스털 구조는 사라진 형태와 색, 감정이 다시 모일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 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고 빛은 기억 속에 감춰진 것을 다시 드러낼 수 있다는 제니퍼 리의 지속적인 사유를 담아낸다.
[피어남의 기억] 꽃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원형 캔버스 위에 피어났던 꽃들은 서서히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빛을 잃어버린 기억처럼, 꽃들은 조용히 자신을 닫았습니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 위를 또 다른 색으로 덮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지우려 했던 것은 꽃이 아니라,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겹의 물감 속에서 그 꽃들의 흔적은 서서히 모여 하나의 크리스털 형태가 되었습니다. 부서진 꽃잎의 시간, 사라진 향기의 기억, 그리고 보이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감정들은 프리즘 안에서 다시 한번 단단하게 응결되었습니다. 이제 기억은 하늘의 색을 품은 채 다시 말을 건넵니다. 덮어버렸던 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피어났습니다. 캔버스 위에서 지워졌던 꽃들은 기억의 크리스털이 되어 다시 피어났습니다.